
지난겨울 FA 시장에서 야구팬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있었다. LG 트윈스 박해민(36)이 타 구단의 더 큰 제안을 뿌리치고 4년 최대 65억원에 잔류를 택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15억가량 더 얹어준 구단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지명조차 받지 못하고 프로에 들어왔던 선수가, 이제는 수십억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박해민의 야구 인생을 처음부터 따라가 보면 이 선택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출발선

박해민의 프로 입성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 졸업 후 신인드래프트에서 어느 구단의 지명도 받지 못했고, 2012년 삼성에 육성선수(당시 신고선수) 신분으로 겨우 입단했다. 계약금도, 보장된 자리도 없는 출발이었다.
당시 삼성은 왕조를 구가하던 최강팀. 그 틈에서 박해민이 파고든 길은 대주자와 대수비였다. 남들이 기피하는 역할을 발판 삼아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대주자가 도루왕 4연패의 사나이가 되다

기회를 잡은 뒤의 성장은 만화의 전개 그 자체였다. 리그 최고 수준의 주력과 타구 판단을 앞세워 주전 중견수를 꿰찬 박해민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도루왕 4연패를 달성하며 리그 대표 리드오프로 올라섰다.
수비에서는 담장을 타고 오르는 홈런 강탈 캐치로 하이라이트를 도배했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 외야를 지키는 국가대표 중견수로 자리 잡았다.
60억 이적, 그리고 4년 개근의 우승 청부사

2022시즌을 앞두고 첫 FA 자격을 얻은 박해민은 LG와 4년 60억 계약을 맺으며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신고선수 출신이 60억 FA가 된 것만으로도 성공 신화였지만, 진짜 증명은 그다음이었다. 이적 후 4시즌 동안 팀이 치른 576경기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전 경기 출전.

2023년 LG의 29년 만의 통합우승에 힘을 보탰고, 2025년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V4를 진두지휘했다. 35세 시즌에 49개의 베이스를 훔쳐 통산 5번째 도루왕에 오르며 KBO 역대 최다 도루왕 타이기록을 세웠고, 중견수 수비상까지 받아낸 커리어하이였다.
돈이 아니라 역사를 택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두 번째 FA. 우승 주장이자 리그 최고 중견수를 향해 kt 등 여러 구단이 손을 내밀었고, 더 큰 금액을 제시한 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해민은 에이전트 없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 LG 잔류를 결정했다. 계약 후 그가 밝힌 목표는 돈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도루왕을 한 번 더 차지해 역대 최다 도루왕 단독 1위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냉정한 시선도 있다. 36세 시즌을 맞는 나이를 고려하면 65억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며, 익숙한 팀에 남는 게 선수 본인에게도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출발선에서 아무런 선택권이 없던 선수가 커리어의 정점에서 스스로 조건을 내려놓고 팀을 골랐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