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팬들에게 최동원과 함께 신적인 존재로 남은 타자가 있다. 타석에서 몸을 흐느적거리는 특유의 ‘흔들 타법’, 그리고 악바리라는 별명의 주인공 박정태다. 그의 야구 인생은 재능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지의 이야기다.
산산조각 난 다리, 끝났다던 선수 생활

박정태는 1991년 데뷔 첫해부터 주전 2루수를 꿰찬 당돌한 신인이었고, 1992년 타율 0.335로 롯데의 마지막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1993년 5월 23일, 모든 것이 멈췄다.
타율 0.359로 타격 1위를 달리던 그는 병살을 막으려 2루로 몸을 날렸다가 상대 유격수와 충돌, 왼쪽 정강이뼈와 발목이 부서지는 복합 골절을 당했다.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대형 부상. 세 차례 수술과 골수 이식까지 받으며 두 시즌을 통째로 재활에 바쳤다.
다시 일어선 악바리, 전성기는 그 뒤에 왔다

1995년 시즌 중 그라운드로 돌아온 박정태는 무너지기는커녕 더 강해졌다. 1998년 타율 0.329로 부활을 알렸고, 1999년에는 31경기 연속 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단일 시즌 최다이자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기록이 끊긴 날의 일화는 그의 사람됨을 보여준다.

상대 3루수의 다이빙 캐치에 기록이 멈추자, 그는 아쉬움 대신 “최선을 다해준 상대에게 고맙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해 박정태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이끌며 롯데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놨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던 그 가을은 지금도 롯데 팬들의 가장 뜨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원클럽맨, 그리고 영원한 캡틴

박정태는 커리어 전체를 롯데에서만 보낸 원클럽맨이다. 홈런 타자가 아니면서도 통산 OPS 0.8을 넘긴 정교하고 끈질긴 타격, 숱한 부상을 이겨낸 오뚝이 근성으로 ‘탱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KBO 40주년 레전드 40인에 ‘불굴의 의지’ 아이콘으로 선정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화려한 기록 이상의 무언가로 기억되는 선수. 롯데 팬들이 박정태를 잊지 못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