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는 1만 7000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그들이 목격한 건 KBO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불명예 기록이었다.

한화 이글스가 삼성 라이온즈에 5-6으로 역전패하며 4연패에 빠졌다. 이날 한화 마운드가 내준 4사구는 무려 18개. 1990년 5월 5일 롯데가 LG를 상대로 얻어낸 17개를 넘어 KBO 한 경기 최다 4사구 신기록이다.
적시타 0개로 6점을 뽑아낸 삼성

삼성은 이날 단 한 개의 적시타도 때리지 못했다. 그런데 6점을 득점했다. 전부 밀어내기 볼넷과 폭투로 얻어낸 점수다. 한화 선발 문동주가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5-0 리드를 안겨줬지만, 불펜이 모든 것을 날렸다.

7회 정우주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헌납한 것이 시작이었다. 8회에는 마무리 김서현이 조기 투입됐지만, 최형우에게 밀어내기 볼넷, 디아즈에게 또 밀어내기 볼넷, 류지혁에게 또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고 폭투까지 더해 3점을 실점했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김서현은 2사 만루에서 최형우와 이해승에게 연속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동점과 역전을 내줬다.
지난 시즌 WAR 상위 4명 중 3명이 떠났다

한화 불펜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시즌 한화 투수진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순위를 보면 답이 나온다.

1위 폰세(8.38), 2위 와이스(5.95), 3위 류현진(4.03), 4위 한승혁(2.54), 5위 문동주(2.53), 6위 김서현(1.99), 7위 김범수(1.33). 이 중 폰세와 와이스는 MLB로 떠났고, 한승혁은 강백호 FA 보상선수로 KT로 갔으며, 김범수는 FA로 KIA로 이적했다. WAR 상위 4명 중 3명이 한꺼번에 이탈한 것이다. 남은 건 류현진, 문동주, 그리고 작년 말부터 ‘맛이 간’ 김서현뿐이다.
김서현, 악몽은 계속된다

김서현의 부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시즌 전반기에는 마무리로 맹활약했지만, 후반기부터 급격히 흔들렸다. 10월 1일 LG전에서는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정규시즌 1위를 헌납했고,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9회에만 6실점하며 역전패의 주범이 됐다.

올 시즌에도 김서현은 불안하다. 스프링캠프에서 159km를 찍었던 구속이 149km대로 떨어졌고, 제구력은 더 심각해졌다. 이날 경기에서도 8~9회 2이닝 동안 볼넷만 5개를 내줬다. ERA는 13.50까지 치솟았다.
“불펜은 다다익선”

지난 시즌 한화가 2위를 할 수 있었던 건 폰세와 와이스가 이닝을 ‘먹어줬기’ 때문이다. 두 선수가 합쳐 59경기에 선발 등판하며 불펜 부담을 덜어줬다. 하지만 올 시즌 그 두 명이 사라지자 불펜에 가해지는 압박이 극대화됐다.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폰세, 와이스, 한승혁, 김범수를 쿨하게 버린 결과”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예견된 참사라는 것이다.
4연패로 6승 8패, 7위까지 추락한 한화. 이날 최형우가 KBO 역대 2번째로 2600안타 고지를 밟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한 1만 7000명의 한화 팬들은 축하 대신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