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역사를 통틀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MVP가 나온 건 딱 한 번뿐이다. 2005년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이 그 주인공이다.
그것도 오승환이 삼성의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끌었음에도 MVP 투표에서 88표 중 55표를 가져가며 압도적으로 선정됐다. 당시 손민한의 성적은 1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6, 다승과 방어율 2관왕이었다.
재능은 넘쳤는데,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아마추어 시절 150km까지 던지던 강속구 투수였다. 고려대에서 에이스로 국가대표까지 오를 만큼 재능 하나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혹사가 문제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잦은 부상을 달고 살았고, 프로 입단 후에도 미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을 정도로 몸이 버텨주지 못했다. 결국 강속구 스타일에서 코너 워크 위주의 맞춰잡기 피칭으로 전환했고, 그게 오히려 손민한을 더 영리한 투수로 만들었다.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의 이유

손민한은 오랫동안 ‘게으른 천재’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재능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지만 훈련에 대한 태도로는 말이 많았다. NC 입단 당시 구단 관계자도 “예전에는 게으른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달라졌더라”고 했을 정도다.
다만 머리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 경기에서 100구 이상을 던지고도 몇 회 몇 번째 공을 어떤 의도로 던졌는지 전부 복기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같이 일했던 야구 관계자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4년 연속 꼴찌 팀을 혼자 끌었다

2005년 전반기에만 14승을 쓸어담으며 20승이 유력해 보였다. 그런데 팀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롯데가 중반 4강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손민한을 선발은 물론 중간계투와 마무리까지 마구잡이로 돌려쓰다 보니 후반기에 4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그렇게도 18승에 방어율 2.46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4년 연속 꼴찌였던 롯데를 5위까지 끌어올린 1등 공신이 됐다. 팀이 포스트시즌 문턱도 밟지 못했음에도 MVP 투표에서 오승환을 제치고 선정된 건 그만큼 숫자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롯데 선수로는 1984년 최동원 이후 21년 만의 MVP였다.
불혹에 10승, 마지막까지 현역이었다

2009년 어깨 수술 이후 오랜 공백기를 겪었다. 선수협 관련 비리 연루설로 복귀가 무산될 뻔하기도 했지만 검찰 무혐의 판정 후 2013년 NC 다이노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그리고 2015년, 만 40세의 나이에 10승을 달성하며 KBO 역사상 최초로 불혹의 나이에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투수가 됐다. 그해 11월 은퇴를 선언했다. 게으른 천재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해서, 불혹의 10승으로 마무리한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