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타자 김병현’ 아닌가요?” 마이너리그 무자비하게 폭격 중인 조원빈

포스트맨

10일 털사 드릴러스(다저스 산하)전에서 한 경기 2홈런을 포함해 4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을 몰아친 조원빈은 더블A 승격 후 단 12경기 만에 9홈런을 쌓았다. OPS는 1.2를 넘는다.

커뮤니티에서는 1999년 마이너리그를 몇 달 만에 뚫고 그해 바로 빅리그에 데뷔했던 김병현의 초고속 코스가 겹쳐 보인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좌완도, 최고 유망주도 안 가린다

이날 멀티 홈런의 내용이 특히 알찼다. 3회 첫 홈런은 높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긴 8호포. 그리고 다섯 번째 타석에서는 좌완 마일스 카바를 상대로 첫 홈런보다 더 강한 타구를 우측으로 날려보냈다. 우타자가 좌완 상대로, 그것도 밀리지 않고 잡아당겨 넘겼다는 점에서 파워의 질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상대의 급도 문제가 안 된다. 지난 4일에는 MLB 파이프라인 기준 투수 유망주 1위(전체 5위) 케이드 앤더슨을 상대로 담장을 넘겼다. 더블A 투수를 폭격하는 걸 넘어, 곧 빅리그에 올라갈 공을 이미 쳐내고 있다는 얘기다. 하이싱글A에서 56경기 동안 친 홈런(8개)을 더블A에서는 12경기 만에 넘어섰다.

2년의 정체를 뚫고 나온 ‘진짜 각성’

이 폭발이 더 극적인 건 직전 2년이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2022년 세인트루이스와 50만 달러에 계약할 당시 5툴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2024시즌을 앞두고는 팀 내 유망주 9위까지 올랐지만, 이후 하이싱글A에서 2년 연속 OPS 0.7을 못 넘기며 전망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올해도 4월까지는 타율 2할에 그쳤다.

반전은 5월부터였다. 한 달간 홈런 5방에 OPS 1.097로 폭주하더니, 하이싱글A 56경기 타율 0.269, 8홈런, 23도루, OPS 0.882로 시즌을 끌어올려 지난달 하순 더블A 승격을 따냈다. 그리고 승격 후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보통 유망주는 리그가 올라가면 적응기를 겪는데, 조원빈은 반대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셈이다.

‘트리플A 패스’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이유

여기서 김병현식 초고속 코스가 마냥 농담이 아닌 근거가 있다. 최근 MLB는 더블A에서 압도적인 타자를 트리플A 없이 바로 올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24년 잭슨 메릴(샌디에이고)이 더블A에서 직행해 신인왕급 시즌을 보냈고, 올해도 조나 콕스(샌프란시스코)가 더블A 맹폭 후 곧장 빅리그에 안착했다. 마침 세인트루이스는 팀 홈런이 내셔널리그 10위에 그칠 만큼 장타 갈증이 심한 팀이다. 조원빈의 파워가 필요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브레이크도 걸어둬야 한다. 12경기는 표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크기고, 이날도 삼진 2개를 당했듯 컨택 안정성은 검증이 더 필요하다. 김병현은 애초에 즉시전력급 투수였고, 타자의 승격 공식은 그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점도 다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시즌 내 트리플A 승격, 그리고 내년 스프링캠프 초청이다.

고우석 다음, 31번째의 꿈

공교롭게도 조원빈이 멀티 홈런을 친 날, 고우석이 한국인 30번째 메이저리거로 데뷔했다. 김도영, 문동주, 이재현과 같은 2003년생으로 KBO 대신 미국을 택했던 조원빈에게는 묘하게 자극이 될 장면이다.

4년을 싱글A에서 버틴 유망주가 이제야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페이스가 여름을 넘겨 이어진다면, ’31번째’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