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박진만 감독은 욕받이다. 팀이 2위를 달리는데도 기용을 둘러싼 팬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급기야 홍준표 전 대구시장에게 멍청한 것 같다는 공개 저격까지 당했다.
그런데 지금 그를 비난하는 팬들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선수 박진만은,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였다는 것이다.
유격수 쪽으로 가면 아웃이었다

박진만의 수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동료의 증언이 말해준다. 김태균은 유격수 쪽으로 공이 가면 아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수비였다고 회상했다.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역대 최고 소리를 들은 비결은 머리였다. 타자의 유형을 읽고 미리 움직이는 예측 수비, 리그 최고의 타구 판단이 평범한 주력을 덮었다.

방망이도 유격수치고 특급이었다. 2001년 타율 3할에 22홈런의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통산 153홈런으로 KBO 유격수 최초 150홈런 고지를 밟았다. 골든글러브만 다섯 번을 가져갔다.
우승 6번, 반지의 사나이

박진만의 커리어는 곧 왕조의 역사다. 1996년 현대에 입단한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 왕조의 유격수로 네 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2004년 말, 재정난의 현대가 박진만만은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그는 FA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2005년과 2006년 삼성의 2연패를 이끌며 4시즌 연속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1980년대 해태 이후 처음 나온 기록이었다.
2006년에는 한국시리즈 MVP와 골든글러브 최다 득표를 동시에 쓸어 담았다. 통산 우승 반지 6개. 그가 지키는 내야는 곧 우승 전력의 다른 이름이었다.
국민 유격수라는 칭호의 무게

박진만이라는 이름을 전 국민에게 새긴 건 태극마크였다. 2006년 WBC 4강 신화,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까지 대표팀 유격수 자리는 늘 그의 것이었다.
큰 경기마다 나온 다이빙캐치는 국민 유격수라는 칭호를 만들었고, SK 시절 응원가 가사가 그 위상을 요약한다.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2015년 은퇴한 그는 2022년 삼성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이 됐다. 취임식에서 그가 고른 등번호 70번은 은사 김재박의 번호였다. 감독 박진만을 향한 평가는 지금도 갈리지만, 2위 팀을 이끄는 성적과 별개로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등번호 7번의 박진만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전설이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