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번트를 아십니까?”..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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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번트 하나를 꼽으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1982년 9월 14일 잠실,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다. 프로야구 원년의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그 점프 한 번은, 한 야구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몸을 던져 만든 기적의 동점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 우승이 걸린 일본과의 최종전. 한국은 1-2로 뒤진 8회 1사 3루에서 승부를 걸었다. 스퀴즈를 눈치챈 일본 배터리는 공을 바깥으로 높게 뺐다. 실패하면 3루 주자가 그대로 죽는 순간, 김재박은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라 기어이 배트를 공에 갖다 댔다.

기적 같은 동점. 직후 한대화의 극적인 3점 홈런이 터지며 한국은 5-2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이 번트가 감독 사인의 오독이었는지, 본인의 순간 판단이었는지는 지금도 증언이 엇갈리는 야구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김재박 본인은 훗날 “타격왕 출신인데 번트로 스타가 됐다”며 웃었다.

여우라 불린 유격수

번트 하나로 기억하기엔 선수 김재박의 커리어가 아깝다. 경북고 입학에 실패하고 대광고와 신생 영남대를 거친 그는 1977년 실업야구 타격 7관왕에 오른 당대의 슈퍼스타였고, 원년 MBC 청룡에 합류해 80년대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군림했다.

유격수 골든글러브만 5회. 타격과 주루, 수비에 영리한 플레이까지 겸비해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린 그는 KBO 유격수 계보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감독으로는 왕조를 지었다

지도자 김재박의 성취는 선수 시절을 뛰어넘는다. 현대 유니콘스 사령탑으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현대 왕조를 건설한 것이다.

이후 LG 지휘봉을 잡았던 시절의 어록들이 밈으로 소비되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정점을 밟은 야구인은 리그 역사에서도 극소수다. 개구리 번트의 그 순발력처럼, 김재박은 한국 야구가 도약하던 순간마다 그 중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