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팬들은 냉정하다. 어제의 영웅도 오늘 무너지면 가차 없이 비난이 쏟아진다. 그런데 LG에는 예외가 있다. 최근 홈런을 맞고 평균자책점이 4점대까지 치솟았는데도, 팬들이 이 선수가 맞으면 그냥 어쩔 수 없는 경기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 41세 베테랑 김진성이다.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민심

김진성은 지난 3일 잠실 한화전에서 노시환에게 결정적인 투런포를 맞으며 무너졌다. 최근 6경기 8실점, 실점과 무실점을 번갈아 반복하는 불안한 흐름이다. 그런데 팬들의 반응은 비난이 아니라 걱정이다. 이튿날 곧바로 노시환을 초구에 잡아내는 등 삼자범퇴로 설욕하자 역시 김진성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좀 맞아도 욕을 못 하겠다, 남은 계약 기간 드러누워도 이해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견고한 민심의 근거는 숫자다. 김진성은 2022년 LG 이적 후 매년 60~80경기를 소화하며 필승조를 지켰고, 그 헌신 위에서 LG는 2023년과 2025년 두 번의 통합우승을 이뤘다. 지난달에는 41세 3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800경기 출장 신기록을 세웠고, 4일 한화전 홀드로 통산 176홀드를 채우며 안지만의 통산 최다 기록(177홀드)에 단 1개 차로 다가섰다. 올 시즌도 홀드 단독 1위다. 마흔이 넘은 투수가 리그에서 가장 많은 홀드를 쌓고 있는 것이다.
‘헌신좌’라는 별명의 아이러니

그를 상징하는 별명 ‘헌신좌’의 탄생 배경은 사실 아찔했다. 2024년 위기 상황에서 교체된 뒤 비공개 SNS에 “몸을 받쳐 헌신한 내가 XX이었네”라는 불만 글을 올렸다가 유출돼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엔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사과 후 오히려 더 헌신적인 투구로 답했다. 그러자 조롱으로 시작된 별명이 어느새 진심 어린 존칭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그만큼 몸을 바쳐온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야구 인생 자체가 헌신의 서사다. 2004년 SK에 지명됐지만 1군도 못 밟고 방출됐고, 2013년에야 NC에서 데뷔했다. 2021년 NC에서 또 방출돼 은퇴를 고민하다 테스트를 거쳐 LG에 입단했다. 그리고 서른일곱부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구단이 먼저 보답했다

LG도 그 헌신을 알았다. 지난 1월 구단 역사상 최초의 비FA 다년계약(2+1년 최대 16억)을 홍창기, 박동원 같은 예비 FA들보다 먼저 김진성에게 안겼다. 역대 최고령 비FA 다년계약이라는 진기록이었다. 김진성은 “LG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는데 마무리까지 잘할 수 있게 됐다”며 철저한 몸 관리를 약속했다.

물론 마흔한 살의 어깨가 예전 같을 수는 없다. 기복은 앞으로 더 잦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방출 두 번을 딛고 일어나 두 번의 우승을 바치고,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며 여전히 가장 험한 순간에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 그 헌신의 무게를 아는 팬들에게 김진성은 성적으로 평가하는 선수가 아니라, 이미 고마움으로 기억하는 선수다. 아무리 못해도 욕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