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우보이 모자를 쓴 196cm의 텍사스 사나이가 대구에 첫선을 보인 날, 롯데 타선은 6이닝 동안 안타 1개를 치는 데 그쳤다. 1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크리스 페덱(30)의 KBO 데뷔전 성적표는 6이닝 85구 1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 그 1안타마저 빗맞은 타구였다.
삼성은 5-0 완봉승으로 3연승을 달리며 2위 LG와의 격차를 2.5경기로 벌렸고, 박진만 감독은 경기 후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완벽했다”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6개 구종, 초구 스트라이크, 그리고 퀵모션 3종

내용을 뜯어보면 ‘압도’보다 ‘완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투구였다. 최고 152km 포심에 투심, 146km 커터, 낙차 큰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까지 6개 구종을 자유자재로 섞었고, 초구 스트라이크 대부분을 변화구로 잡으며 롯데 타자들의 수 싸움 자체를 봉쇄했다.

도루왕 황성빈은 체인지업 두 개에 삼진으로 돌아섰고, 4회 볼넷 위기는 병살로 지웠으며, 6회 실책 출루 상황에서는 완벽한 퀵모션으로 황성빈을 1루에 묶었다. 포수 강민호는 페덱이 “퀵모션이 3가지 있으니 빠른 주자가 나가면 알려만 달라”고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진만 감독이 “괜히 그 정도 메이저리그 경력을 쌓은 게 아니었다”고 콕 집은 대목이다. 삼성 선수로 데뷔전 승리를 챙긴 건 구단 역대 15번째다.
텍사스에서 온 남자, 대구에 우승을 약속하다

경기 전부터 그림이 됐다. 정장에 카우보이 모자 차림으로 등장한 텍사스 오스틴 출신의 장신 투수에 팬들은 환호했고, 페덱은 입단 과정에서부터 1위 경쟁 중인 삼성의 우승 가능성에 끌렸다며 이 도시에 우승을 안기겠다는 취지의 각오를 전해 팬심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삼성의 오퍼를 거절하고 텍사스 잔류를 택했다가, 계약 다음 날 방출되는 반전 끝에 대구로 온 그 투수가 첫 등판부터 약속의 선수금을 지불한 셈이다.

타선도 화답했다. 1회 구자욱이 시즌 9호 선제 투런을 쐈고, 3회 김성윤의 솔로포, 5회 디아즈의 희생플라이로 리드를 넓혔다. 페덱 뒤를 이은 이승민-이승현-김재윤도 무실점으로 팀 완봉승을 완성했다.
상대가 롯데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들뜨기 전에 짚을 것도 있다. 페덱의 올해 메이저리그 성적은 14경기 0승 7패로 처참했고, 이날 상대는 최근 타격 침체가 깊은 롯데였다. 구속으로 찍어누르는 유형이 아니라 두 바퀴, 세 바퀴 돌며 분석이 쌓였을 때가 진짜 시험대라는 신중론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9이닝당 볼넷 2개 수준의 통산 제구력과 6개 구종의 조합은 분석만으로 공략하기 어려운 재료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삼성의 계산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라도의 부상 공백 속에 1선발 역할을 맡을 투수가 첫 경기에서 합격점 이상을 받았고, 선두 삼성은 우승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확인했다. 다음 등판에서 상위권 타선을 상대로도 이 완성도가 유지된다면, 오러클린을 내보내고 페덱을 택한 결단은 올여름 KBO 최고의 영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