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후가 2023년 말 샌프란시스코와 맺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700억 원) 계약. 당시엔 포스팅 역대 최고액이라 거품 논란까지 있었다.
그런데 3년 차인 지금, 이 계약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메이저리그 몸값 폭등과 샌프란시스코 내 다른 대형 계약들의 처참한 성적표가 겹치면서, 오히려 혜자 계약이라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혜자로 보이는 이정후 계약

지난 겨울 FA 시장 최대어 카일 터커는 다저스와 4년 2억 4000만 달러, 연평균 60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오타니에 이은 역대 2위 규모다. 반면 이정후의 남은 계약은 2027년부터 3년간 연평균 2100만 달러 안팎, 합쳐야 6000만 달러 수준이다. 터커를 1년 쓸 돈이면 내셔널리그 타율 최상위권 외야수 이정후를 3년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터커는 20홈런-20도루가 기본인 5툴 플레이어라 직접 비교는 무리다. 하지만 요즘 시장에서 타율 3할대에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검증된 주전급 외야수를 이 가격에 묶어둔 계약 자체가 드물다는 게 핵심이다. ESPN이 이정후를 트레이드 매물 가치 7위에 올리며 “시장에 나오면 상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 평가한 것도 결국 계약의 가성비 덕분이다.
팀 내 다른 계약들과 비교하면 더 선명하다

샌프란시스코 내부로 눈을 돌리면 격차는 민망할 정도다. 2033년까지 계약이 남은 데버스, 2031년까지 묶인 아다메스(7년 1억 8200만 달러), 2030년까지인 채프먼. 모두 이정후보다 훨씬 큰 돈을 받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팀 페이롤을 짓누르고 있다.

실제로 ESPN 버스터 올니는 샌프란시스코가 이 세 명에 대한 트레이드 제안에 열려 있다고 보도했다. 구단이 정리하고 싶어 하는 계약과, 다른 팀들이 탐내는 계약. 이정후의 위치가 어느 쪽인지는 자명하다. 셀러 전환설 속에서도 이정후가 미래 핵심으로 분류돼 온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혜자’에는 전제가 붙는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계약이 혜자인 건 어디까지나 올해 같은 성적이 유지될 때 얘기라는 것이다. 이정후는 장타력이 평균 이하인 코너 외야수라, 타율이 조금만 내려앉아도 계약의 평가는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상과 적응기로 먹튀 소리를 듣던 계약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먹튀들 옆에 세워놓으니 좋아 보이는 착시라는 냉소도 있다.
그리고 혜자 계약의 역설도 있다. 이정후에게는 2027시즌 후 옵트아웃 권리가 있다.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그는 남은 계약을 버리고 더 큰 계약을 찾아 시장에 나갈 가능성이 크다. 즉 이 계약이 진짜 혜자로 판명되는 순간, 샌프란시스코가 그 혜택을 끝까지 누리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단이 파이어세일 와중에도 이정후의 트레이드 가치를 진지하게 저울질하는 배경에는 이런 계산도 깔려 있다. 거품이라던 1700억이 헐값 소리를 듣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년 반. 결국 계약의 가치는 계약서가 아니라 선수가 증명한다는 걸, 이정후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