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비하 응원으로 물의를 빚었던 배재고 야구부가 6일 광주를 직접 찾아 사과했다. 그런데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사과를 받은 쪽이었다.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고개 숙인 학생들에게 “고개 들어라, 어깨 펴라”며 손을 내민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의 품격에,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어른의 모습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눈물의 사과, 그리고 뜻밖의 위로

이날 오후 광주일고 강당에는 배재고 야구부원 전원과 감독, 교장, 학부모 등 80여 명이 잔뜩 긴장한 채 들어섰다. 배재고 주장은 자필 사과문을 꺼내 “같은 선수로서 정말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
광주 시민과 광주일고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90도로 고개를 숙였고, 감독은 “승패에만 집중하느라 제때 제지하지 못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책했다. 이효준 배재고 교장은 사과 도중 끝내 눈물을 쏟았다.

그때 마이크를 잡은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의 첫마디가 분위기를 바꿨다. “어머니들이 들어오시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고 계셔서 마음이 아프다.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요. 어깨 펴요.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사과는 앞으로 잘 사는 것”이라며 “다음에 일고 학생들을 만나면 당당하게 기량을 맘껏 펼쳐 멋진 승부를 해주는 게 용서를 구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다독였다. 아이들을 잘못 이끈 건 어른의 책임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과를 받아준다는 것의 무게

이 장면이 더 값진 건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교장은 사건 직후 서울로 올라가 협회에 직접 항의 서한을 전달했던 당사자다. 이후 학교로는 “절대 사과를 받아주면 안 된다”는 항의 전화가 수십 통씩 걸려왔고, 방문을 앞두고는 폭발물 협박 글까지 올라와 경찰에 시설 보호를 요청해야 했다. 그 압박 속에서도 광주일고는 학생들이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필요하다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학생들과 지도자도 어른스러웠다. 조윤채 광주일고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실수는 반성하면 된다”고 위로했고, 광주일고 선수 대표는 오히려 “우리도 다른 팀에 상처 주는 언행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교장이 1929년 학생독립운동 때 두 학교가 함께 옥고를 치렀던 인연까지 소개하자, 두 학교 선수들은 일렬로 마주 서서 한 명씩 손을 맞잡았다.
조롱으로 시작해 교육으로 끝났다

행사를 마친 두 학교 학생들은 나란히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흰 국화를 들고 함께 헌화하는 모습은, 일주일 전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조롱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사과하면 조롱이 따라오기 일쑤인 요즘,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 사과를 온전히 받아준 이 장면에 많은 이들이 뭉클해한 이유는 분명하다. 잘못을 벌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다시 일어설 길을 열어주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교육이 할 일이라는 걸 광주일고가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