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구 중 60구가 직구였다. 사실상 한 가지 공으로 4이닝 1실점을 만든 셈이니 숫자만 보면 인상적이다. 14일 키움전에서 정우주가 보여준 투구는 지난 7일 KIA전에서 1⅔이닝 4볼넷 2실점으로 조기강판됐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고, 한화 팬들 입장에선 모처럼 반가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뜨겁게 환호하기 전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 정우주가 상대한 타선이 리그에서 가장 약한 키움 타선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정우주가 상대한 타선은

키움은 현재 팀 타율 0.226, 팀 홈런 19개, 팀 OPS 0.619로 모두 리그 10위, 즉 꼴찌다. 이날 경기에서 키움이 기록한 안타도 단 1개였는데, 그나마 브룩스의 타구가 페라자의 글러브를 맞고 나온 행운의 안타였다.

정우주 본인도 인정했다.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 안에 많이 넣으려고 집중했다”고 했는데, 그게 통한 건 키움 타자들이 직구 위주 투구를 상대로 배트를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고 155km의 직구를 보여준 건 분명 고무적이지만, 오늘 성적을 그대로 다른 팀 상대 성적표로 환산하기엔 무리가 있다.
직전까지의 성적은 어땠나

정우주는 데뷔 후 불펜으로만 던지다 올 시즌 5월 2일 KIA전에서 처음 선발 마운드에 섰다. 5월 7일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도 KIA를 상대했는데 1⅔이닝 4볼넷 2실점으로 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됐다.
시즌 전체 성적을 보면 19경기 15이닝 ERA 7.20, WHIP 2.33으로 불펜에서도 제구 불안이 계속됐다. 이닝당 사사구 1개에 가까운 수치가 그걸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박준영이 데뷔전 선발승을 거두며 대안이 등장했음에도 김경문 감독은 “정우주에게 세 번 정도 기회를 주겠다”고 밀어붙였고, 오늘이 그 세 번째였다.
직구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이날 정우주의 투구 비율은 직구 82%였다. 상대가 약한 타선이었기 때문에 먹혔지만, 변화구 없이 직구 위주로 던지는 방식이 강팀 상대에서도 통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허인서도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잘 들어와서 직구가 더 살았다”고 했는데, 바꿔 말하면 변화구 제구가 흔들리는 날엔 직구도 위협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년 플레이오프 삼성전에서 기록한 67구가 당시까지 최다 투구수였던 선수가 이날 73구를 던지며 선발 적응 중이라는 것도 체력 관리 측면에서 지켜볼 부분이다.
기뻐하되 방심하지 말자는 이야기

물론 오늘 경기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볼넷을 허용하며 영점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삼진으로 위기를 빠져나오는 모습은 첫 선발 때와 달리 마운드에서 한층 침착해졌다는 걸 보여줬다.
평균 150km대를 넘나드는 직구 구위 자체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이고, 아직 만 20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 여지도 충분하다. 다만 이 한 경기로 정우주의 선발 안착을 단정 짓기엔 이르다. 다음 등판 상대가 어디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고, 한화도 그 결과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5선발 자리에 온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