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O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선수”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이야기

FA 계약을 따낸 뒤 성적이 내려가는 선수, 돈값을 못 한다는 말을 듣는 선수가 KBO에 넘쳐나는 요즘, 이대호의 커리어를 다시 들여다보면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롯데가 100억 원을 제시했는데 그걸 거절하고 일본으로 떠났고, 일본에서도 성공한 뒤 MLB에 도전했다. 돈보다 도전을 택한 선수였다.

투수로 시작해 타자로 바꾼 첫 번째 전환점

이대호는 원래 투수였다. 2001년 롯데에 2차 1순위로 입단했을 때 주 포지션이 투수였는데, 어깨와 팔꿈치 통증으로 구속이 떨어지며 한계가 왔다. 그때 2군 감독 우용득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했고, 2001년 9월 1군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2년 차에 당시 최약체였던 롯데가 팀의 미래를 위해 그를 4번 타자로 기용했다. 4월 한 달 타율 0.343, OPS 0.99 이상을 기록하며 기대를 충족시켰지만 이후 기복이 생겼고, 새로 부임한 백인천 감독이 체중 감량을 강요하며 무리한 훈련을 시켜 결국 무릎 수술까지 받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찰에서 16kg 감량, 그리고 트리플 크라운

2005년 시즌 종료 후 이대호는 경남 양산의 한 사찰로 개인 전지훈련을 떠났다. 한 달 반 동안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식단 관리와 운동으로 16kg 감량에 성공했다. 그 결과가 2006년 시즌으로 나타났다.

투고타저가 심했던 그해 타율 0.336, 26홈런, 88타점으로 타율·홈런·타점 3개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며 1984년 이만수 이후 22년 만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4번 타자로 타율 0.360, OPS 1.2 이상을 기록하며 금메달에 기여해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2010년에는 타율·홈런·타점·안타·득점·출루율·장타율 7개 부문을 모두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칠관왕을 달성했다.

롯데 100억 거절, 그리고 더 큰 도전

201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에게 롯데는 4년 100억 원을 제시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대호는 이걸 거절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오릭스와 2년 7억 엔에 계약했고, 2012년 144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6, 24홈런, 91타점으로 베스트 9에 선정됐다. 2014년 소프트뱅크로 이적해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2015년엔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 9에 올라 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2016년, 35세의 나이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400만 달러에 계약하며 MLB 무대를 밟았다. 지명타자·1루수로 포지션이 한정된 30대 중반 선수가 MLB에 도전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복귀 후에도, 은퇴 시즌에도

2017년 롯데로 복귀한 이대호는 그해 타율 0.320, 34홈런, 111타점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22년 은퇴 시즌에는 23홈런, 101타점, OPS 0.9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KBO 최고령 골든글러브를 받으며 마지막까지 돈값을 증명했다.

FA 계약 직후 성적이 내려가고, 보장된 연봉 앞에서 안주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지금, 이대호의 커리어는 돈보다 도전을 택했던 선수가 어떤 레거시를 남기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