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를 지키던 좌완 파이어볼러. LG 팬들에게 이상훈은 성적 이상의 존재, 청춘의 한 페이지다. 야생마라는 별명처럼 그의 야구 인생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질주의 연속이었다.
좌완 20승,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1993년 LG에 입단한 이상훈은 이듬해 18승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첫 다승왕에 올랐고, 한국시리즈 1·4차전 선발로 나서 신바람 야구의 통합우승을 완성했다. 그리고 1995년, 20승 5패로 2년 연속 다승왕을 차지했다.

리그 최초의 좌완 정규시즌 20승이자,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좌완 투수가 다시 밟지 못한 고지다. 그해 한일 슈퍼게임에서는 일본 올스타를 상대로 12이닝 1실점의 괴력투를 선보이며 해외 진출의 발판까지 마련했다.
선발왕에서 세이브왕으로, 그리고 세계로

전성기 선발 투수가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는 것도 파격이었는데, 이상훈은 그 자리에서도 정상에 섰다. 1997년 37세이브로 구원왕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다승왕과 구원왕을 모두 차지한 투수는 리그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다. 이후 일본 주니치와 메이저리그 보스턴을 거치는 도전을 이어갔고, 2002년 국내로 돌아와 2004년 유니폼을 벗었다. 서른셋, 이른 은퇴였다.
마운드를 내려와 무대에 오르다

은퇴 후의 선택은 더 이상훈다웠다. 그는 기타를 메고 록밴드 무대에 올랐다. 야구 규격에 갇히기를 거부했던 야생마의 인생 2막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야구계로 돌아와 지도자와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지만, LG 팬들의 기억 속 그는 여전히 1995년의 장발 좌완이다.
그가 달았던 등번호 47번(톰 글래빈에게서 따온 번호)을 LG가 함부로 내주지 않는 것은, 공식 영구결번이 아니어도 팬들의 마음속에선 이미 결번이기 때문이다. 짧아서 더 강렬했던 첫사랑. LG 팬들에게 이상훈은 그런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