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연속 170이닝 이상. 당분간 리그에서 깨기 어려운 대업을 이룬 ‘철완’이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 KIA 타이거즈 양현종(38)이 1일 잠실 LG전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에 나섰는데,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0km에도 미치지 못했다.
1회에는 140km를 넘어가는 공들이 대부분이었으나, 3~4회에는 130km대 후반의 공들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베테랑의 현실이다.
기세가 사라지다

KIA는 전날 잠실 LG전에서 올러의 6이닝 무실점 호투와 타선의 호조를 묶어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내심 1일 경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길 바랐고, 산전수전 다 겪은 양현종 또한 그 바람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회에만 3실점을 하면서 전날의 좋았던 기세가 사라졌다. 선두 홍창기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고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신민재에게 7구 승부 끝에 좌전 안타를 맞으며 위기가 시작됐다. 오스틴이 몸쪽 공을 잘 잡아 돌려 좌전 안타를 만들어 1사 1·2루가 됐고,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양현종은 좀처럼 과감하게 승부하지 못했다.

박동원 타석 때는 먼저 2스트라이크를 선점하고도 승부에 어려움을 겪더니 결국 볼넷을 내줬다. 패스트볼을 최대한 정교하게 던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ABS존에서 살짝 빠졌고, 양현종도 아쉬워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어 문성주에게도 5구 모두 패스트볼을 던졌지만 역시 볼넷이 나왔다. 밀어내기 실점. 오지환의 2루 땅볼 때 1점, 구본혁의 기습번트 때 1점을 더 잃으며 1회에만 3점을 내줬다.
피안타보다 볼넷이 많았다

양현종은 이날 4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4볼넷 4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피안타보다 볼넷이 더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2회부터 4회까지 노련한 피칭으로 추가 실점을 막아냈지만, 2회에도 2사 후 연속 볼넷을 내주며 조기 교체 위기에 놓였다. 불펜에서 투수가 몸을 풀기 시작했고, 이동걸 투수코치의 마운드 방문 이후에야 마음을 다잡았다.
KIA 벤치는 4회를 양현종의 마지막 이닝으로 정했다. 투구 수가 이미 많았기 때문이다. 양현종은 박해민-홍창기-신민재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면서 본인의 임무를 마쳤고, 5회에는 황동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KIA는 2-7로 패했다.
구속 저하는 올해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양현종의 구속 저하가 올해 갑자기 벌어진 일은 아니다. 최근 2년간 구속은 꾸준하게 떨어져 왔고, 평균자책점도 2024년 4.10, 작년 5.06으로 해마다 높아졌다. 이날이 시즌 첫 경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몸이 더 풀리면 구속도 더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패스트볼로 정면승부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면서 자연히 볼넷이 많아지고, 이닝 소화는 예전만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게 타당하다. 이범호 감독도 “6~7이닝을 던져주면 제일 고마운 것이지만, 평균 5이닝 이상만 던져주면 팀에는 굉장히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눈높이를 낮췄다.
KIA의 구조적 위협

문제는 KIA에 양현종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양현종의 뒤를 이어 토종 에이스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의리는 첫 등판에서 여러 보완점을 남겼고, 윤영철과 김도현은 부상 중이다. 2년차 김태형에 기대가 걸리지만 상수로 보기는 어렵고, 2군에서도 마땅히 두각을 드러내는 선발감이 없다. 팀의 구조적 위협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양현종은 올 시즌을 앞두고 3번째 FA 자격을 얻어 KIA와 2+1년 45억원 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어찌됐건 당분간은 노련하게 버틸 것이고, 부상이 없다면 규정이닝 언저리 혹은 그 이상을 소화할 선수다. 하지만 이 계약 기간 내내 양현종을 밀어낼 만한 선수들을 키워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단의 미래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