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광주 KIA전, 장현식이 약 5년 8개월 만에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마지막 선발 등판이 2020년 10월 KIA 시절이었으니, 사실상 완전히 다른 보직으로의 전환이었다.
결과는 4와 3분의 2이닝 6피안타 2탈삼진 3사사구 2실점. 나성범에게 맞은 홈런 한 방만 빼면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승패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6년 만의 선발 등판이라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합격점에 가까운 투구였다.
52억의 무게가 만들어낸 절박함

장현식이 LG와 맺은 계약은 4년 52억원, 전액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KIA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그를 영입하며 LG는 불펜 보강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2025시즌 결과는 참담했다. 56경기 49와 3분의 2이닝, 3승 3패, 평균자책점 4.35, WHIP 1.73.
시즌의 상당 기간 동안 상대 타자에게 출루를 너무 쉽게 내주는 투수로 전락했고, 접전 상황에서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첫 시즌 WAR이 0.73에 그쳤을 정도로, 52억이라는 금액에 걸맞은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보직을 통째로 바꾸는 결단

이런 상황에서 염경엽 감독이 꺼낸 카드는 단순한 기용 변화가 아니라 보직 자체의 재설계였다. 2군에서 피칭디자인을 새로 다듬은 뒤 1군에 복귀시켜 두 차례 롱릴리프로 테스트했고, 11일 SSG전에서 4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며 구원승까지 따내자 곧바로 선발 전환이라는 다음 단계를 밀어붙였다.
보통 거액을 들여 영입한 FA 선수가 부진하면 보직을 유지한 채 기회를 더 주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염 감독은 그 틀을 깨고 아예 역할 자체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슬라이더 비중을 늘린 전략적 변화

이날 투구 내용을 보면 단순히 자리만 바꾼 게 아니라 투구 스타일 자체에 변화를 줬다는 게 드러난다. 최고 149km 포심을 22개 던진 반면 슬라이더는 35개나 구사했다. KIA 시절에는 포심 비중이 높았던 투수가 이제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쓰는 쪽으로 완전히 바뀐 셈이다.

1회 무사 1루에서 김호령에게 슬라이더 두 개로 병살타를 유도했고, 4회에도 박민을 상대로 같은 패턴의 병살타를 끌어냈다. 피칭디자인을 바꾸자는 결정과 그 결정이 실전에서 통하는 모습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경기였다.
작년의 LG와 지금의 LG가 다른 이유

LG는 작년 우승 핵심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1위를 달리기 쉽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4~5선발 공석이라는 약점을 장현식, 이정용, 김윤식으로 메우면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다른 감독이었다면 52억짜리 FA가 1년 차에 완전히 무너졌을 때 보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염경엽 감독은 그 대신 선수의 커리어 초반 데이터, 즉 선발 경험과 투구 지구력이라는 강점을 다시 끌어내는 방식으로 활용 가치를 재발견했다. 염 감독은 일단 장현식에게 두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한 번 더 합격점을 받으면 장현식은 셋업맨이 아니라 선발투수로 LG에서의 두 번째 정체성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