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루에 멈추면 사이클링 히트였다. 3루타, 안타, 홈런을 이미 쳤고, 2루타 하나만 있으면 대기록 달성이었다. 그런데 박승규(26·삼성)는 멈추지 않았다. 이종욱 3루 코치가 손을 올리며 멈추라는 사인을 냈지만 무시하고 2루를 돌아 3루까지 내달렸다.

10일 대구 NC전, 222일 만에 1군 무대에 복귀한 박승규가 보여준 장면이다. 개인의 영광보다 팀의 1점을 택한 순간, 삼성 벤치는 숙연해졌다.
복귀전부터 5타수 4안타 4타점 폭발

박승규는 지난해 8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정우주의 강속구에 오른손 엄지를 맞아 분쇄골절을 당했고, 가을야구를 눈앞에 두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긴 재활을 마치고 이날 1번 우익수로 복귀한 그는 첫 타석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1회 리그 최고 좌완 구창모의 포크볼을 강타해 중견수 키를 넘기는 3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최형우의 땅볼 때 홈을 밟으며 구창모의 개막 후 12이닝 무실점 행진을 끊어냈다. 3회에는 바깥쪽 직구를 밀어 우전 안타, 5회에는 144km 몸쪽 직구를 당겨 좌월 솔로홈런까지 터뜨렸다. 사이클링 히트까지 2루타 하나만 남긴 상황에서 타석 기회가 최소 두 차례 남아 있었다.
8회 2사 만루, 역전 싹쓸이 3루타

4-4 동점을 허용한 8회말, 2사 만루에서 박승규의 다섯 번째 타석이 찾아왔다. NC 투수 김진호의 직구를 강타한 타구가 중견수 천재환의 키를 넘어 떨어지는 순간, 누상의 주자 3명이 모두 홈을 밟는 역전 싹쓸이 적시타가 됐다.

여기서 2루에 멈추면 그대로 생애 첫 사이클링 히트 달성이었다. 구자욱 등 벤치의 선배들도 “2루로 돌아가라”며 마치 자기 일인 양 안타까워했고, 이종욱 3루 코치도 손을 올려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타구가 떨어지는 순간 박승규는 주저 없이 가속했고, 순식간에 3루까지 내달렸다.
결과적으로 공식기록은 ‘2루타’가 아닌 ‘3루타’가 됐고, 사이클링 히트는 무산됐다. 하지만 박승규는 후속 타자 류지혁의 2루타 때 홈을 밟으며 추가 득점에 성공했다. 자신의 기록 달성보다 팀의 1점을 택한 선택이 실제로 득점으로 이어진 것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3루 도착 후 박승규는 크게 포효했을 뿐, 기록 무산에 대해서는 덤덤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3루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면 언제든 3루까지 뛸 생각이었다”면서 “개인의 영광스러운 기록이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222일간의 부상 공백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잘 준비하고 있었는데 캠프 때 또 부상이 오길래 이 시련을 지혜와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더 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어수선했던 분위기에 던진 메시지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복귀 첫 경기 도파민에 취해 혼자 달린 거라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은 최근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선수단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의 헌신이었다. 박승규가 보여준 ‘팀 퍼스트’ 정신은 대기록 달성보다 값진 장면이었다.

박진만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박승규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경의를 표했고, “박승규가 부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건강하게 돌아와서 오늘 경기에서 날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삼성은 이날 NC를 8-5로 꺾으며 6승 3무 3패가 됐다. 좌절을 환호로 바꿔낸 박승규의 복귀전, 두고두고 회자될 감동적인 드라마 한 편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