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잠실구장. 두산 홈팬들로 가득 찬 1루 측 관중석을 향해 SSG 유니폼을 입은 김재환이 헬멧을 벗고 고개를 숙였다. 박수를 쳐주는 팬들도 있었고 야유를 보내는 팬들도 있었다.
김재환이 삼진을 당하면 평소보다 더 큰 환호가 터졌고, 아웃을 당할 때마다 비슷한 반응이 반복됐다. 두산 팬들 감정이 복잡한 이유가 있다.

18년을 함께했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이별이 매끄럽지 않았고, 거기다 나가서 저렇게 못하고 있으니 야유를 보내고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가줘서 고맙기도 한 묘한 감정이다.
이면 조항으로 조건 없이 나간 게 두산 팬들을 섭섭하게 했다

김재환은 2008년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두산에 입단해 18년을 뛴 원클럽맨이었다. 2021년 FA 때는 4년 115억 원이라는 대박 계약을 두산과 맺었다. 그런데 그 계약에 숨겨진 조항이 있었다.

4년 계약 종료 후 두산과 우선 협상을 진행하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조건 없이 보류권을 풀 수 있다는 이면 조항이었는데, 이 조항이 올 시즌을 앞두고 발동됐다.

일반적인 FA 이적이었다면 두산에 보상금 20억 원 또는 10억 원과 보상 선수가 발생했겠지만 이 조항 덕분에 김재환은 아무런 보상 없이 SSG로 떠났고 두산은 그냥 선수를 잃었다. 계약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조항이 뒤늦게 발동되면서 두산 팬들이 섭섭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나가서 저러고 있다

두산 팬들이 야유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한 이유가 따로 있다. 김재환이 SSG에서 처참하게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 27일 2군으로 내려갈 때 타율이 0.110이었고, 2군 조정을 거쳐 복귀한 8일 기준으로도 타율 0.132, OPS 0.482다.

2022년 FA 계약 이후 장타력이 급감하고 성적이 내리막을 탄 선수가 두산보다 구장이 작은 인천에서 새 출발하겠다며 떠났는데 그 인천에서도 이 성적이니 두산 팬들 입장에서는 “나가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김재환 본인도 이유를 안다

김재환은 경기 후 부진의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타이밍이 뒤로 형성됐다. 새 팀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고 했다.
2군에서 2주를 보내며 타이밍을 앞으로 당기는 훈련에 집중했고 복귀 후 두 경기 연속 안타를 때리며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타율 0.132라는 숫자가 워낙 처참하다.

이날 멀티히트는 했지만 잘 맞은 타구가 아니라 두산 시프트를 피해 빠져나간 코스 안타였다. SSG가 이숭용 감독이 “이제 타격감이 올라올 일만 남았다”고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