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광주 LG전을 앞두고 염경엽 감독은 오지환을 허리 통증으로 선발에서 제외했다. 그러면서 타순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강한 1번 타자가 한동안 대세였다.
다저스도 오타니 쇼헤이가 한때 50-50 기록을 위해 1번 타순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염경엽 감독은 이 흐름을 LG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스틴을 1번에 둔다고 생각해보라

염 감독은 “메이저리그는 강한 2번이 더 좋다지만, 리그마다 다르다. 우리는 3번에 가장 좋은 타자를 쓰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타니를 1번에 쓰는 다저스처럼 오스틴을 1번에 둔다고 생각해보라. 점수가 나겠나. 맨날 선두타자 출루하지”라고 직접 예를 들었다.
1번에 최고 타자를 두면 그 타자가 매번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서게 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게 핵심 논리다.
다저스 타순도 계속 바뀐다

흥미로운 건 다저스 안에서도 타순 철학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베츠는 과거 한때 1번을 맡기도 했지만, 최근 2년은 대부분 2번 타순에서 뛰었다. 그런데 올 시즌을 앞두고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베츠를 2번에서 3번으로 한 칸 더 내리는 결정을 내렸고, 오타니가 리드오프, 새로 합류한 카일 터커가 2번을 맡는 구조로 바뀌었다.

즉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팀도 매 시즌 선수 구성에 맞춰 최고 타자의 자리를 1번부터 3번까지 계속 조정해왔다는 의미다. 강한 1번이 무조건 정답이라는 식의 단순한 공식은 없다는 셈이다.
KBO에서도 강한 1번이 실험된 적은 있다

2024년 KBO에서도 강한 1번 타자 트렌드가 시도된 적이 있다. KIA는 소크라테스, KT는 로하스, 한화는 페라자를 1번에 세우는 실험을 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이강철 KT 감독은 로하스의 출루율이 4할을 넘는다는 이유를 들었고, 김경문 한화 감독은 부진한 타자에게 더 많은 타석을 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즉 그때의 강한 1번 기용은 출루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선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지, 무조건 팀 내 최고 타자를 1번에 둬야 한다는 절대 공식은 아니었다.
결국 타석당 득점 기여도 문제

염 감독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건 단순한 감으로 타순이 짜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1번 타자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무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첫 타석을 맞이하는 게 거의 고정된 패턴이다. 이 상황은 득점 기대치가 가장 낮은 구간에 속한다.
반면 3번이나 4번 타자는 1, 2번이 만들어놓은 주자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설 확률이 높아진다. 같은 타격 능력을 가진 선수라도 어떤 상황에서 타석에 서느냐에 따라 실제 득점 기여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홍창기가 살아나야 하는 이유

염 감독이 오스틴을 3번에 고정하는 이유는 거꾸로 1번 홍창기의 역할과도 연결된다. 그는 “홍창기가 6월부터 좋아지고 있다. 그래야 우리 팀도 득점 루트가 다양해지고, 오스틴과 문보경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1번이 꾸준히 출루해줘야 3번 오스틴과 4번 문보경이 타석에 들어설 때 주자가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래야 이들의 장타력이 실제 득점으로 연결된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최고 타자를 앞세우는 게 아니라, 타순 전체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짜느냐가 염 감독이 강조하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