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투수 7명을 갈아버린 감독” 기아 역대 최악의 감독 정체

한기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KIA 팬들은 두 가지를 떠올린다. 데뷔 당시 받았던 10억원짜리 계약금, 그리고 너무 일찍 끝나버린 선수 생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든 사람이 서정환 감독이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팀을 사상 첫 최하위로 이끌고 시즌 도중 경질된 뒤,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서정환은 2006시즌 팀을 4위로 끌어올렸다. 결과만 보면 분명한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 4위 한 번을 만들기 위해 동원한 방식이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수술 직후 선수를 한 달 만에 18경기

가장 먼저 망가진 건 신용운이었다. 2005년 9월 토미존 수술을 받은 투수가 채 1년도 쉬지 못하고 그해 8월 복귀했는데, 시즌이 끝나는 10월 초까지 약 한 달 보름 사이에 18경기, 37이닝 넘게 던졌다.

팔꿈치 인대를 새로 이식한 투수에게 가할 수 있는 부담이 아니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신용운은 다시는 수술 전의 구위로 돌아오지 못했다.

고졸 신인을 마무리로 쓰며 한 달 반에 58이닝

한기주의 사례는 더 극단적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혹사로 본인 한계투구수 문제를 안고 있던 신인이었는데, 8월 불펜으로 전환된 뒤 호투가 이어지자 서정환은 그를 한 달 반 동안 58이닝 넘게 투입했다.

막 프로에 데뷔한 선수에게, 이미 어깨와 팔꿈치에 부담이 누적된 상태에서 또 한 번 과부하를 건 셈이었다. 10억원짜리 유망주의 미래가 이 시점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신용운과 한기주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김진우는 어깨 부상으로 6~7월 등판하지 않았는데도 시즌 100이닝 넘게 선발로 던졌다. 윤석민은 마무리 장문석이 부진해지자 7월부터 마무리까지 겸하며 구원으로만 63경기, 94이닝 넘게 소화했다.

정원은 4~5월 두 달간 17경기 26이닝을 던졌고, 이상화와 전병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고정된 자리 없이 굴려졌다. 한 시즌에 이 정도 규모의 투수진이 동시다발적으로 한계까지 내몰린 사례는 KBO 역사에서도 흔치 않다.

다음 해,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왔다

2007시즌이 되자 모든 대가가 그대로 드러났다. 선발로 고정된 윤석민과 마무리로 고정된 한기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투수가 무너졌다. 신용운은 구위가 완전히 망가졌고, 김진우는 부진 끝에 시즌 도중 팀을 무단이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원과 이상화도 회복하지 못했고, 전병두는 단 9경기 출장에 그쳤다. 부족해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올라온 양현종, 진민호 등 신인급 투수들에게도 멀티이닝이 기본값으로 주어졌다. 윤석민은 이 해 7승 18패를 기록하며 다승 최하위의 대명사가 됐다.

10년 넘게 이어진 후유증

한기주는 결국 일찍 유니폼을 벗었고, 신용운도 다시는 예전 구위를 되찾지 못했다. 장성호와 윤석민의 내구성에도 이때의 무리한 운용이 결정타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만약 이때 갈려나간 투수들이 정상적으로 관리받으며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2010년대 KIA가 불펜진 붕괴로 고생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후 KIA가 거둔 우승들은 두꺼운 투수진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혈한 타선의 힘으로 만든 결과였다는 시각이 많다. KIA가 다시 안정적인 마운드를 갖추기까지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평가는 갈리지만

김종국 감독 체제에서도 불펜 혹사 논란은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누가 더 최악이었는지를 두고 KIA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다만 서정환의 경우는 토미존 수술 직후의 선수와 고교 혹사를 막 끝낸 신인까지 동시에 갈아 넣었고, 그 여파가 10년 넘게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 수 위로 꼽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