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단칼에 거절당했다. 전반기 1위 삼성이 새 외국인 투수로 점찍은 크리스 페덱(30)은 KBO행 제안을 고사하고 지난달 30일 텍사스와 계약하며 빅리그 잔류를 택했다.
그런데 11일, 그 페덱이 삼성 유니폼을 입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 극적인 반전 사이에는 단 하루 만에 뒤집힌 운명과, 포기하지 않은 구단의 집요한 구애가 있었다.
계약 다음 날 날아온 DFA 통보

반전의 시작은 텍사스였다. 페덱이 계약한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 구단은 그를 지명할당(DFA) 처리했다. 빅리그 잔류를 위해 삼성까지 거절했던 투수가 하루 만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삼성 프런트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이종열 단장은 거절당한 뒤에도 계속 구애했다며, KBO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화려하게 복귀한 코디 폰세(한화→토론토) 사례를 들어 “너에게도 분명 좋은 기회”라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당혹감 속에 있던 페덱의 마음을 움직인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샌디에이고 시절 동료 김하성. 페덱은 김하성과의 대화 등을 통해 KBO리그 환경을 면밀히 확인했다.
다른 하나는 삼성의 순위였다. 1위 경쟁 중인 팀이라는 점이 승부욕을 자극했고, “우승할 수 있는 팀”이라는 판단이 서자 47만 3,333달러(약 7억 1,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삼성도 추후 빅리그 재도전 길을 열어주며 화답했다.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를 샀다

페덱의 이력서는 역대 KBO 외인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196cm 장신 우완으로 메이저리그 통산 132경기 중 119경기를 선발로 나서 32승, ERA 4.83, WHIP 1.26을 기록했다.

9이닝당 볼넷 2.04개의 제구력에, 데뷔 시즌엔 그해 53홈런 신인왕 피트 알론소를 상대로 “잡으러 가겠다”고 공언하고 삼진 2개를 뺏은 일화도 있다. 재활을 마치고 오는 유형이 아니라 최근까지 빅리그 로테이션 경쟁 속에 있던, 말 그대로 ‘현역 메이저리거’를 데려온 셈이다.

떠나는 오러클린이 실패한 것도 아니다. 매닝의 부상 대체로 합류해 17경기 5승 5패, ERA 4.86에 퀄리티스타트 7회로 전반기 1위에 분명히 기여했다. 다만 삼성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흐름을 봤고, ‘충분한 카드’와 ‘판을 바꿀 카드’ 사이에서 후자를 골랐다. 우승을 노리는 팀의 냉정한 계산이다.
이제 증명은 마운드에서

물론 이름값이 성적을 보장하진 않는다. 잦은 부상으로 유망주 시절 기대치를 다 채우지 못한 커리어이고, KBO 적응이라는 변수도 남아 있다.
하지만 시즌 중 이만한 매물이 시장에 나온 것 자체가 행운이었고, 삼성은 그 하루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절했던 리그에서 우승 반지를 노리게 된 페덱. 그의 마음을 돌린 ‘폰세 코스’가 현실이 되려면, 일단 한국시리즈 트로피부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