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으론 명장, 선수로는 최악” 어떻게 1군에서 버텼나 궁금한 야구선수 염경엽 이야기

야구 예능 ‘스톡킹’에서 김구라는 종종 염경엽 감독의 선수 시절을 소재로 웃음을 유발한다. 지금이야 우승을 밥 먹듯 하는 명장이지만, 선수 때는 정말 못 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예능용 과장이 아니다. 기록을 들여다보면 염경엽은 KBO 역사에 남을 만큼 ‘방망이가 안 되는’ 타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군에서 10년을 버텼고, 지금은 리그 최고의 감독이 됐다. 이 간극이야말로 염경엽이라는 인물의 진짜 이야기다.

숫자로 증명되는 ‘역대 최악의 타자’

먼저 그의 선수 시절 성적을 보자. 염경엽은 15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 통산 타율 0.195로 KBO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통산 출루율 0.262, 장타율 0.252 역시 같은 기준에서 가장 낮다. 프로 통산 홈런은 단 5개뿐이었다. 한 야구 매체가 500경기 이상 출전한 은퇴 선수 중 ‘역대 최악의 타자 1위’로 그를 꼽았을 정도다.

흥미로운 건, 같은 ‘역대 최악의 타자’ 명단에 조범현, 김경문 같은 이름도 함께 올랐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셋 다 훗날 감독이 됐다. 타격이 절망적이었던 선수들이 지도자로 성공하는 아이러니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런데 어떻게 1군에서 살아남았나

답은 수비와 주루에 있다. 178cm 65kg의 깡마른 체구였지만, 염경엽은 어깨가 좋고 수비가 탁월한 유격수였다. 1994년에는 거의 전 경기에 출전하며 단 8개의 실책으로 유격수 최소 실책을 기록했다. 타격이 아무리 나빠도 수비만큼은 리그 정상급이었기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세이버메트릭스로 봐도 그렇다. 순수 타격 지표는 1500타석 이상 최하위지만, 통산 WAR은 -2.0으로 최하위가 아니다. 유격수·2루수로 뛰며 수비에서 가중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즉 방망이로 까먹은 걸 글러브로 메운 선수였다. 태평양 시절에는 주전으로 뛰었지만, 팀 사정상 주전이 되다 보니 빈약한 타격 탓에 오히려 대수비 요원이라는 본래의 장점까지 흐려진 케이스였다.

박진만에게 밀리며 흘린 눈물

그의 선수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이 있다. 1996년, 초대형 유격수 유망주 박진만이 현대에 입단하면서 염경엽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시즌 개막 전날, 자기 대신 박진만이 선발 명단에 적힌 전광판을 보고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박진만조차 ‘수비는 좋은데 타격은 별로’라는 평을 받았는데, 염경엽은 그보다도 못한 ‘수비밖에 없는 선수’였다. 결국 그는 대수비·대주자 요원으로 밀려났고, 2000년 현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할 때 야구 용품을 팔아 만든 500만 원을 투병 중이던 대학 후배 고(故) 임수혁에게 성금으로 내놓은 일화도 그의 사람됨을 보여준다.

실패가 만든 명장

염경엽 본인도 자신의 선수 시절을 ‘야구하는 한량’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는 은퇴 후 곧바로 코치로 가지 않고 선수단 매니저, 스카우트, 운영팀장 등 프런트 실무를 두루 거쳤다. 선수로서의 실패를 데이터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로 메운 것이다. 체육인답지 않은 깔끔한 언변으로 “대기업 면접도 통과할 것”이라는 평을 듣는 그의 스타일도 이 시기에 다져졌다.

넥센 주루코치 시절 팀 도루 꼴찌를 1위로 끌어올리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감독으로 부임해 넥센을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다. 그리고 2023년,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며 LG 감독으로 부임해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2025년에도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악의 타자가 남긴 역설

염경엽은 “통산 타율 1할대, 그 실패가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못 치는 선수였기에 남들보다 더 야구를 공부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수비와 주루, 그리고 머리를 썼다. 그 과정에서 쌓인 야구에 대한 이해가 지도자 염경엽의 자산이 됐다.

김구라가 예능에서 그의 선수 시절을 놀림거리로 삼는 건, 역설적으로 지금의 염경엽이 그만큼 대단한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최악의 타자가 최고의 감독이 된 이야기. 염경엽의 커리어는 야구가 재능만의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실패가 때로는 가장 강력한 밑거름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