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살에도 마운드에 올랐던 한화의 진짜 레전드”.. ‘대성불패’ 구대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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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호주프로야구(ABL) 마운드에 백발이 성성한 좌완이 올라왔다. 등번호 주인공은 1969년생, 만 54세의 구대성. 4년 만의 현역 복귀전에서 그는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령 등판 기록을 갈아치웠다.

1993년 프로 데뷔로부터 딱 30년째 되는 해였다. 은퇴식은 진작 치렀지만 은퇴는 하지 않은 남자. ‘대성불패’라는 별명은 은유가 아니라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1996년, 마무리가 MVP를 가져간 시즌

구대성의 커리어에서 가장 압도적인 챕터는 1996년이다. 마무리 투수로 뛰면서 18승 24세이브를 쓸어 담았다. 선발이 아닌 구원투수가 18승을 거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당시 한화의 운영 방식이 설명해준다. 선발이 5~6회를 버티면 구대성, 선발이 일찍 무너져도 구대성.

요즘 기준으로는 혹사 논란이 열 번은 나왔을 기용이지만, 그는 그 부하를 다 받아내고 리그를 지배했다. 그 결과가 KBO 역사상 유일하게 구원투수가 차지한 정규시즌 MVP다. 마무리 투수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저평가되던 시대에, 투표인단이 세이브 투수에게 MVP를 줄 수밖에 없게 만든 시즌이었다.

시드니의 155구, ‘일본 킬러’의 탄생

국가대표 구대성은 또 다른 전설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상대는 일본. 구대성은 이 경기에서 무려 155구를 던지는 완투로 일본 타선을 잠재웠고, 한국 야구는 올림픽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그에게는 ‘일본 킬러’라는 호칭이 붙었고, 2006년 제1회 WBC 4강 신화에서도 일본전마다 그의 왼팔이 앞에 섰다. 훗날 본인도 일본과 붙을 때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고 말했을 만큼, 한일전의 구대성은 커리어 수치 이상의 존재였다.

한국·일본·미국·호주, ‘지구대성’의 세계일주

30대에 접어든 뒤에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1년 일본 오릭스로 건너가 4시즌을 던졌고, 2005년에는 36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마운드까지 밟았다. 빅리그 성적은 33경기 평균자책점 3.91.

화려하진 않았지만, 타석에서 남긴 장면 하나는 지금도 회자된다. 생애 첫 메이저리그 타석에서 ‘빅 유닛’ 랜디 존슨의 공을 받아쳐 2루타를 만들고 홈까지 파고든 것. 더그아웃의 동료들이 뒤집어졌던 이 장면은 훗날 본인이 ‘내가 미친놈이었지’라고 웃어넘긴 일화로 남았다.

2006년 한화로 돌아와 2010년까지 뒷문을 지킨 그는 KBO 통산 214세이브를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경기 날, 선수단과 프런트 전원이 ‘대성불패’가 마킹된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그 훈훈한 그림 뒤에서 영구결번은 성사되지 않았다.

은퇴 과정에서 구단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본인이 사양했다는 이야기가 엇갈려 전해질 뿐, 정확한 내막은 지금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분명한 건 결과다. 송진우, 장종훈, 정민철, 김태균의 번호가 걸린 한화 구단에 구대성의 15번은 없고, 그 번호는 이듬해 신인 유창식에게 넘어갔다.

은퇴식은 했지만, 은퇴는 안 했다

번호는 걸리지 않았지만 구대성은 자기 방식으로 야구에 남았다. 호주로 건너가 시드니에 정착했고, ABL 질롱코리아의 초대 감독을 맡았으며, 감독 신분이던 2019년 50세의 나이로 깜짝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더니, 2023년엔 아예 선수로 팀에 합류해 54세 최고령 등판 기록까지 세웠다. 은퇴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한국에서 은퇴식을 했으니 은퇴는 한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도 기회가 오면 또 던지고 싶다고 했다.

영구결번이 레전드의 유일한 증명서라면 구대성은 서류 미비다. 하지만 96년의 18승 24세이브, 시드니의 155구, 그리고 54세의 마운드까지, 그는 번호 대신 장면으로 남은 레전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