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역사에는 제구가 좋아서가 아니라, 제구가 나빠서 더 무서웠던 투수가 있다. 어디로 날아갈지 본인도 모르는 강속구를 뿌리던 좌완 이혜천이다.
타자들은 그의 공에 맞아도 화를 내지 못했다. 일부러 던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예측 불가능함 자체가 무기였던, ‘혜천대사’라 불린 사나이의 이야기다.
작두 사고가 만든 왼손 투수

이혜천의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오른손잡이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소 여물을 만들다 작두에 오른손 약지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피나는 노력 끝에 왼손잡이로 전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왼손에서 나온 공이 좌타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 강속구가 됐으니, 운명의 아이러니다.
부산상고 시절 청룡기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98년 2차 2라운드 전체 12순위로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좌완이 귀했던 베어스는 그의 타고난 구속과 향상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었다.
“맞아도 화를 못 내는 공”

이혜천의 투구폼은 사이드암에 가까운 로우 쓰리쿼터 딜리버리였다. 좌완으로는 보기 드물게 평균 140km/h 중반, 최고 152~154km/h를 찍는 강속구를 던졌다. 문제는 그 공이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백스톱을 출렁이게 하는 대형 폭투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런데 이 약점이 역설적으로 강점이 됐다. 빠른 공이 어디로 올지 모르니 타자 입장에서는 몸쪽 공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팀 두산 좌타자들이 “이혜천과 같은 팀이라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김기태, 양준혁, 이승엽 등 당대 최정상급 좌타자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은 투수로 그를 꼽았다.

양준혁은 2002년 이후 그를 상대로 33타수 5안타, 타율 0.151에 묶였고, 이승엽도 가장 까다로운 투수로 그를 지목했다. 카림 가르시아에게 “내 공에 위압감을 느끼지 않냐”고 먼저 물어볼 만큼, 본인도 그 공포를 즐겼다.
혜천대사, 그리고 수많은 별명

이혜천에게는 별명이 유독 많았다. 가장 유명한 건 ‘혜천대사’다. 삭발한 적도 있는 스님 같은 외모에, 상대 팀에게 대자대비하게 점수를 퍼준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이름 자체가 법명처럼 들리는 것도 시너지를 냈다. 잘 던지는 날엔 신이었지만 무너지는 날엔 끝없이 무너졌기에 ‘혜르노빌’, ’12억 화염방사기’ 같은 별명도 붙었다. 전세냐 월세냐 묻는 프런트 직원에게 “저 달세인데요”라고 답했다는 일화에서 ‘달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화려한 별명 뒤에는 혹사의 그늘도 있었다. 스무 살이던 1999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19이닝을 던졌고, 김인식 감독 체제에서 살인적으로 굴려졌다. 함께 혹사당하던 동료 차명주가 무너진 것과 달리, 이혜천은 그 고무팔을 견뎌내며 오히려 내구성을 증명했다.
선발 전환과 류현진과의 경쟁

만년 불펜이던 그는 2005년 선발 전환의 기회를 잡으며 전성기를 열었다. 그해 6월 18일 한화전에서 99구 무사사구 완봉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제구 불안의 대명사가 볼넷 하나 없이 완봉을 한 것이다.
진짜 절정은 2006년이었다. 변화구 제구까지 안정되며 전반기 평균자책점 2.41로 리그 2위에 올랐고, 신예 류현진과 평균자책점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9월 1일 둘의 선발 맞대결에서는 이혜천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비록 막판 페이스가 떨어지며 최종 8승 2패 평균자책점 2.79로 마쳤지만, 그 해의 이혜천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리그 정상급 투수였다.
일본, 그리고 긴 마침표

2008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그는 총액 260만 달러에 일본 야쿠르트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왼손 사이드암이라는 희소성이 매력이었다. 일본에서는 구속을 다소 낮추고 제구에 집중했는데, 한때 12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원포인트 릴리프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다만 2년 통산 1승 2패 1세이브 17홀드,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한 채 방출됐다.

2010년 말 친정 두산과 총액 12억 원에 계약하며 돌아왔지만, 전성기의 구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81.3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고, 2차 드래프트로 NC 유니폼을 입은 뒤 2015년을 끝으로 KBO를 떠났다. 이후 호주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18년 은퇴를 선언했다.
제구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따라다닌다. 그래도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 공이 없었다면, 좌타자들을 떨게 하던 ‘혜천대사’라는 캐릭터도 없었을 것이다. 빼어난 성적을 남긴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약점이 곧 개성이 됐던 독특한 투수로 기억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