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대를 풍미한 대도였다. 빠른 발과 넘치는 파이팅, 그리고 FA 역대 최고액이라는 타이틀까지. 정수근은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빛났던 선수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는 이제 화려한 기록보다 음주와 폭력이라는 단어가 먼저 따라붙는다. 재능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 프로의 삶이라는 것을, 정수근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증명했다.
문제아에서 도루왕으로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수근은 어린 시절 공부와 거리가 먼 말썽꾸러기였다. 야구 유니폼을 입은 친구가 멋있어 보여 야구부에 들어갔고, 또래보다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검도장 거울 앞에서 밤늦게까지 스윙을 연습했다.

그 노력은 곧 재능으로 꽃폈다. 1995년 OB 베어스에 입단한 그는 데뷔 시즌부터 빠른 발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1997년 20살의 나이에 타율 0.315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01년에는 KBO 최초로 6년 연속 40도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4년에는 역대 최연소 350도루를 달성하며 전준호의 기록을 6년 가까이 앞당겼다. 그야말로 리그를 대표하는 1번 타자이자 대도였다.
화려함의 정점, FA 최고액

2003시즌 후 정수근은 FA 시장 최대어로 떠올랐다. 원소속팀 두산과 협상이 결렬되자 롯데와 6년 총액 40억 6천만 원에 계약하며 당시 역대 FA 최고액 기록을 세웠다. 부산 팬들은 그의 합류에 열광했고, 이적 첫해 올스타전에서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며 인기를 증명했다.

하지만 정점은 곧 추락의 시작이었다. 2004년 올스타전 직후, 새벽에 취객과 시비가 붙자 차에서 야구 배트를 꺼내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음주운전 면허취소 사실과 사건 축소 시도까지 드러나며 KBO로부터 무기한 출장 정지를 받았다. 거액을 들여 영입한 FA가 후반기를 통째로 날린 것이다. 이후로도 롯데 팬에게 야구공을 던지고, 강병철 감독 차량을 돌로 훼손하는 등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임의 탈퇴, 그리고 불명예 은퇴

2008년, 주장으로 선임되며 재기를 노렸지만 7월 만취 상태로 경비원과 경찰관을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가을야구를 노리던 팀에 찬물을 끼얹은 이 사건으로 그는 임의 탈퇴됐고, KBO 17년 만의 무기한 실격 중징계를 받았다.
이듬해 징계가 풀려 393일 만에 복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의 한 술집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가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롯데는 그를 퇴출했고, 정수근은 2009년 32살의 젊은 나이로 쓸쓸히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 후에도 멈추지 않은 추락

문제는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그의 추락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수근은 2021년 6월 음주운전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도, 불과 3개월 뒤인 9월 또다시 무면허 음주운전을 저질러 이듬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같은 시기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되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23년 12월에는 남양주의 한 주점에서 지인이 3차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맥주병으로 머리를 두 차례 내리쳐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두피 열상과 두개관 내 출혈 등 상해를 입었다. 재판을 받던 와중인 2024년 9월에는 또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혐의가 추가됐다. 결국 2025년 1월, 법원은 특수상해와 음주운전 혐의로 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2004년부터 따지면 음주운전만 5차례, 거기에 수차례의 폭력 전과가 더해진 결과였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

정수근의 선수 시절 기록은 지금 봐도 빛난다. 통산 500도루에 가까운 발, 두 차례의 골든글러브, FA 최고액이라는 타이틀까지. 만약 자기 관리만 됐다면 그는 KBO 역사에 이름을 남긴 레전드 대도로 기억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 남은 건 ‘악마의 재능’이라는 씁쓸한 수식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그라운드 밖에서의 자기 관리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 정수근은 그 냉혹한 진리를 자신의 인생 전체로 보여준 비극적인 사례로 남았다. 프로 선수에게 실력만큼이나 인성과 절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가장 아프게 증명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