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KBO 리그에서 53홈런을 쳐낸 타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해 MVP는 그 타자가 아니었다. 같은 해 이승엽이 아시아 신기록 56홈런을 세웠기 때문이다.
타율 0.335, 장타율 0.720, OPS 1.198, 타점 142개, 볼넷 133개라는 역대급 성적을 찍고도 2인자로 남아야 했던 선수. 심정수 이야기다.
잠실에서도 홈런 치던 타자

심정수가 얼마나 강한 타자였는지를 보려면 그가 두산 시절 내내 잠실을 홈구장으로 썼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잠실은 KBO에서 손꼽히는 투수 친화 구장이다. 그런데 두산 시절 심정수는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마다 18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1998년 타이론 우즈, 김동주와 함께 우동수 트리오를 형성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0년 플레이오프 LG전에서 1승 2패로 몰린 상황에서 4차전부터 6차전까지 3경기 연속 결승 홈런을 때려내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이 생긴 건 그때였다.
2인자의 숙명, 이승엽의 시대에 걸렸다

2001년 선수협 갈등으로 두산을 떠나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심정수는 오히려 전성기를 맞았다. 타자 친화 구장인 수원으로 홈구장이 바뀐 것도 영향을 줬다. 김용달 타격코치가 집요하게 설득해 바꾼 타격폼도 맞아 들어갔다. 2002년 46홈런, 2003년 53홈런. 두 시즌 연속 3할-40홈런-100타점-100득점을 기록한 KBO 역사에 손꼽히는 활약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승엽의 전성기와 완벽하게 겹쳤다. 2002년에는 이승엽이 마지막 경기 홈런으로 1개 차이 홈런왕을 가져갔고, 2003년에는 이승엽이 아시아 신기록 56홈런을 세웠다. 심정수는 두 해 모두 홈런왕 타이틀을 빼앗겼다. 당시 MVP 투표에서 타율, 출루율, 장타율, 소속팀 우승까지 모두 심정수가 앞섰는데도 이승엽이 70표 차이로 수상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회자된다.
라섹 시술 하나로 커리어가 무너졌다

2인자 설움을 끝내려고 선택한 결정이 커리어를 앞당겨 끝냈다. 안경을 쓰고 타격하는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받은 라섹 시술이 문제였다. 낮에는 괜찮았지만 야간 경기에서 빛이 번져 보이는 부작용이 생겼다. 해가 짧은 봄과 가을 야간 경기에서는 사실상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 공에 방망이가 나가는 빈도가 늘었고 배트 중심부에 맞는 타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심정수는 나중에 의사에게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무릎과 어깨 부상이 겹치면서 삼성 이적 후 4년간 네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33세에 은퇴, 무릎이 아니라 눈이 더 문제였다

2008년 12월 심정수는 공식적으로 무릎 부상을 은퇴 이유로 밝혔다. 그런데 본인이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무릎 부상 정도는 3~4년 더 참고 뛸 수 있었다고 했다. 진짜 문제는 눈이었다. 라식 부작용으로 생긴 두통과 어지럼증이 야구는 물론 일상생활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이승엽이 42세까지 현역을 뛴 것과 비교하면 33세 은퇴는 너무 이른 마무리였다.

통산 wRC+ 148.8로 용병을 제외하면 역대 5위, 우타자로는 이만수 다음으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금도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로 보면 역대 최고 우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심정수가 라식 시술 하나 때문에 전성기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난 것은 KBO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