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년 유망주였던 선수가 팀을 옮기자마자 리그를 폭격하며 MVP에 오른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2009년 KBO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인공은 김상현. LG에서 벤치만 지키다 KIA로 트레이드되자마자 홈런왕·타점왕·MVP를 휩쓴 그는 ‘LG를 탈출해 성공한 선수’, 이른바 ‘탈쥐(탈LG)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야구가 아닌 어이없는 사건으로 장식되고 말았다.
만년 유망주의 설움

1980년생 김상현은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2000년 해태에 입단했다. 타고난 힘과 장타력을 갖췄지만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며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02년 LG로 트레이드됐다. LG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버텼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특히 2009년 FA로 정성훈이 3루수로 영입되면서 김상현의 입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등번호 7번마저 빼앗기고, 감독이 그의 하이파이브를 무시하는 장면이 짤방으로 돌 만큼 찬밥 신세였다. 파워는 있었지만 선구안과 수비에서 약점이 뚜렷했고, 그렇게 그는 잊혀가는 선수처럼 보였다.
트레이드가 만든 신데렐라

반전은 2009년 4월에 찾아왔다. LG 시절 인연이 있던 황병일 코치의 연락을 받은 뒤, 그날 저녁 곧바로 고향 팀 KIA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그리고 유니폼을 갈아입은 김상현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그해 121경기에서 타율 0.315, 36홈런 127타점, 장타율 0.632로 타격 3관왕에 올랐다.

특히 8월 한 달에만 홈런 15개를 몰아치며 월간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세웠고, KIA의 12년 만의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최희섭과 함께 ‘CK포’를 구축한 이 활약으로, 그는 시즌 MVP 투표에서 90표 중 79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수상했다. 시즌 도중 트레이드된 선수가 MVP를 차지한 건 사상 처음이었다. 언론은 그를 ‘2009년판 신데렐라’라 불렀다.
‘김상사’라는 별명

김상현에게는 별명이 많았다. 까만 피부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떠올리게 하는 데다, LG로 갔다가 다시 KIA로 돌아온 것이 마치 파병을 마치고 귀환한 모습 같다고 해서 ‘김상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무엇보다 그는 LG를 떠나 성공한 대표 사례로 남으며 ‘탈쥐의 상징’이 됐다. 실제로 LG를 떠난 뒤 MVP에 오른 선수가 김상호, 김상현, 박병호, 서건창 등 여럿이라, LG 팬들에게 김상현의 이름은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을 남겼다. 트레이드 후 인터뷰에서 “LG에선 기회가 적었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며 LG 팬들과의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한 시즌의 신기루, 그리고 하락

문제는 그 화려함이 딱 한 시즌에 그쳤다는 점이다. 2010년 부상 속에서도 79경기 21홈런(역대 최소 경기 20홈런)을 치며 슬러거의 면모를 보였지만, 2009년의 위력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이후 잔부상에 시달리며 평범한 성적을 이어갔고, 2013년 SK로 트레이드된 뒤 다시 kt로 옮겨갔다. 결국 그의 KIA 시절은 ‘한 시즌 플루크’라는 아쉬운 평가와 함께 마무리됐다.
어이없는 사건, 그리고 불명예 은퇴

그리고 그의 커리어는 실력이 아닌 어이없는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다. 2016년 6월, 허리 통증으로 2군에 있던 김상현은 전북 익산의 한 원룸촌 인근에서 승용차 문을 열고 자위행위를 하다 길을 지나던 여대생과 눈이 마주쳤고, 신고를 받고 공연음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소속팀 kt는 그를 즉시 경기 중 교체하고 임의 탈퇴 처리하며 사실상 퇴출했다. 한때 리그를 폭격했던 MVP 출신 거포는 이 사건 하나로 선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이 사건 이후 그에게는 ‘딸상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붙었다.
화려했던 만큼 씁쓸한 뒷모습

김상현의 야구 인생은 극과 극을 오갔다. 만년 유망주에서 트레이드 한 번으로 리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데렐라 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된다.
하지만 그 정점이 워낙 짧았고, 마지막이 야구와 무관한 사건으로 얼룩지면서 그의 이름은 화려함보다 씁쓸함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재능과 한 번의 기회가 만들어낸 눈부신 시즌,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지 못한 뒷모습. 김상현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아이러니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