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묘한 일이 벌어졌다. KIA에 2-5로 진 키움이 경기 후 특타를 준비하자 서울시설공단 관계자가 나타나 조명을 꺼버렸다.
키움이 대관 계약상 오후 11시까지 사용 권한이 있고 경기가 오후 9시21분에 끝났으니 여유가 충분한 상황이었음에도 공단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쫓아냈다. 키움 선수들이 철수하자 공단은 곧바로 조명을 다시 켜고 그라운드 정비를 시작했다. 불을 끈 게 기술적 문제가 아니었다는 게 그 자리에서 명확해진 것이다.
팬들이 들고일어났다

야구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KBO 리그가 지난해 1200만 관중을 돌파하고 올 시즌 1300만 관중 신기록까지 노리는 시점에, 공공기관이 프로야구 선수단의 훈련을 막는 장면이 팬들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관련 민원이 쏟아졌고, 서울시까지 민원이 이어졌다. 평소 “키움 팬이 어디 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듣던 팬들이 이번만큼은 하나로 뭉쳤다. 공단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규모의 반발이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설종진 감독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이후 30년 가까이 키움 한 팀에서만 일해온 인물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키움이 2016년 고척을 홈으로 삼은 이후 경기 후 특타가 이번에 처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지난해 11월 있었던 일도 재조명됐다. 당시 공단 직원이 지인을 데려와 국가대표 전용 통제구역인 더그아웃에서 훈련을 구경하게 했고, 선수들 앞을 막으며 사인과 셀카를 요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공단은 뒤늦게 해당 직원에게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선수들에게는 출입을 통제해놓고 정작 자신들 지인에게는 더그아웃을 열어준 셈이었다.
빛 좋은 개살구, 고척돔의 구조적 문제

공단과의 관계에서 키움이 쩔쩔매는 건 이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자 출입구에서 3루 더그아웃으로 이동하는 복도조차 보안을 이유로 출입이 통제된 상태고, 키움은 시설 관련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단 측과 얘기를 해봐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2024년 MLB 서울시리즈 당시에는 MLB 사무국 요청에 따라 고척 인조잔디가 전면 교체되는 걸 키움이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MLB에는 금방 움직이는 공단이 정작 홈 구단에게는 특타 하나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소등 하나가 불러온 팬들의 분노가 예상 밖으로 컸다는 사실이 공단에게 이 관계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