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문보경(26)은 세계가 아는 타자였다. WBC 조별리그 4경기에서 타율 0.538, 2홈런 11타점. 1라운드 최다 타점 신기록을 세우며 오타니, 저지를 제치고 대회 타점왕에 올랐고, MLB닷컴은 그에게 ‘슈퍼문(Super Moon)’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그로부터 넉 달, 잠실의 문보경은 완전히 다른 선수다. 17일 KT전 1-6 완패로 LG가 3연패에 빠진 날, 팬들의 분노가 향한 곳은 외국인 투수들이 아니라 4번 언저리에서 침묵을 거듭한 문보경이었다.
찬스마다 멈추는 방망이, 한 달 반의 침묵

이날 경기가 압축판이었다. 문보경은 6회 1사 1, 2루 추격 찬스에서 범타로 물러났고, 8회 2사 1, 3루에서도 침묵하며 마지막 불씨를 껐다. 시즌 OPS는 0.759까지 내려앉았다.

숫자만 보면 최악까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흐름이다. 한 달 반 넘게 이어지는 부진에 득점권에서 유독 작아지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큰 점수 차에서만 친다는 뼈아픈 조롱까지 따라붙었다.
팀 타선의 중심이 멈추자 팀도 함께 멈췄다. LG는 선두 삼성과 1.5경기 차로 벌어졌고, 5연승의 KT에게는 1.5경기 차로 쫓기며 2위마저 위태로워졌다.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들

성적 부진만이라면 이 정도 여론은 아니었을 것이다. 팬들이 유독 격앙된 데는 몇 가지 배경이 겹친다. 첫째, WBC의 잔상이다. 국제무대에서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세계를 폭격하고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까지 밝혔던 선수가, 정작 소속팀에서는 의욕 없어 보인다는 인상 비평이 나온다.

둘째, 몸 상태다. 최근 눈에 띄게 불어난 체격을 두고 자기관리에 대한 아쉬움이 팬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고, 팀 안팎에서도 비슷한 쓴소리가 흘러나온다는 이야기까지 회자된다. 셋째, 얄궂게도 그는 9월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다. 소속팀에서 삽을 푸다 국가대표 유니폼만 입으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도는 이유다.
다만, 화살이 문보경에게만 향할 일인가

균형을 잡자면 반론도 있다. OPS 0.759는 문보경 커리어 기준 명백한 저점이고, WBC 강행군과 시즌 초반 부상 여파로 몸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는 사정도 있다. 저점이라는 건 뒤집으면 평균 회귀의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기용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달 반째 부진한 타자를 중심타선에 고정해 욕받이로 만든 벤치의 책임론이다. 이날 패배의 직접 원인도 사실 웰스의 홈런 두 방(6실점)이었다. 그럼에도 4번 타자의 숙명은 잔인하다. 통합 2연패를 노리는 팀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이름이 중심타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