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좀 느리면 어때” 기아 성영탁, 공만 빠른 투수들보다 훨씬 나은 이유

투수를 무너뜨리는 건 상대 방망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멘탈이다. 아무리 강속구를 뿌려도 볼넷을 남발하면 경기를 내주고, 반대로 압도적 구위가 없어도 타자와 정면승부를 펼치는 ‘배짱’이 있다면 벤치가 가장 믿는 필승조가 된다. 지금 KIA 타이거즈 불펜에서 그 배짱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바로 2년 차 스무 살 성영탁이다.

’10라운드의 기적’이 필승조가 되기까지

2004년생인 성영탁은 동주초(부산서구리틀)-개성중-부산고를 거쳐 2024년 10라운드 96순위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드래프트 당시 원서접수 마감일과 지명일이 겹쳐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낮은 기대 속에 프로에 발을 들였다.

입단 첫해 퓨처스리그에서 경험을 쌓았고, 지난해 5월 20일에야 1군에 콜업됐다. 그런데 콜업 당일 데뷔전에서 2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더니 6월 21일까지 17⅓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조계현(13⅔이닝)의 구단 신인 데뷔 무실점 기록을 경신했다. ’10라운드의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구속보다 중요한 것

성영탁의 구속은 화려하지 않다. 투심 142km, 커터 134km, 커브 125km. 투심과 커터는 리그 평균(투심 143km, 커터 137km)에 못 미친다. 하지만 구속이 전부가 아니다.

프로 입단 후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한 성영탁은 좌타자 몸쪽을 망설임 없이 찌르는 포심, 고교 시절부터 날카로웠던 슬라이더(트랙맨 측정상 커터), 새롭게 장착한 투심이 어우러져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지난해 52.1이닝을 던지며 이닝당 출루허용(WHIP)은 0.97명에 불과했다. 50이닝 이상 등판한 불펜 중 조병현(SSG·0.89)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치였다.

성영탁은 “투심과 커터를 던지는 건 인플레이 타구를 많이 만들기 위함”이라며 “삼진을 잡는 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빠르게 승부하면서 적은 투구수를 가져가는 투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규정이닝 30% 이상 등판 투수 중 이닝당 투구수가 14.4개로 가장 적었다.

정해영 부진 속 떠오른 마무리 대안

성영탁은 올 시즌 6경기 6⅓이닝 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2를 기록 중이다. 11일 한화전에서는 1⅔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세이브를 달성했다. 마무리 정해영이 4경기 평균자책점 16.88로 최악의 출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영탁은 든든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성영탁은 “시범경기 때는 좀 안 좋았지만, 지금은 컨디션이나 밸런스가 좋은 것 같다. 벌써 ‘힘 떨어졌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된다”며 “여전히 개막 엔트리에 들어갔다는 설렘이 있어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승리를 지키러 올라간다는 게 좋다”

최근 성영탁은 홈구장인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훈련 중 3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23년) 스카이박스에서 입단식이 열렸을 때 형들이 그라운드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봤는데, 러닝을 하면서 스카이박스를 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오르더라. ‘챔피언스필드에서 꼭 야구하고 싶다고 했는데, 진짜 여기에 있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KIA 불펜의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성영탁은 계속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목표는 따로 없다. 풀타임 시즌을 치르고 싶다. 누군가의 승리를 지키러 올라간다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냥 재밌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던지고 있다.”

볼넷으로 자멸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벤치 입장에서 정면승부를 마다하지 않는 성영탁은 가장 든든한 카드다. 이범호 감독이 선택한 강심장. 스무 살 성영탁의 성장이 광주 팬들의 가슴을 매일 밤 설레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