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컵스전, 이정후는 4타수 2안타 1득점으로 시즌 타율을 0.331까지 끌어올리며 멀티히트를 완성했다. 그런데 이날 가장 화제가 된 건 타격이 아니라 8회 수비였다.

4-1로 앞선 8회초 2사 2루, 마이클 부시가 친 장타성 타구를 이정후가 끝까지 쫓아가 펜스에 부딪히며 잡아냈다. 316피트짜리 타구였다. 선발 로건 웹은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고, 관중석에서는 ‘정후 리’를 연호하는 함성이 터졌다.
중견수 불가 판정 받고 우익수로 옮긴 선수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현지에서는 이정후의 수비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중견수로는 수비가 안 된다는 판정을 받고 우익수로 보직을 옮겼는데, 그 이후에도 뜬공 처리에서 판단력 부족이 지적되는 장면들이 종종 나왔다.

라이너성이나 빠른 타구도 아닌 평범한 뜬공에서조차 아쉬운 움직임을 보인다는 비판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이정후의 수비를 보고 차라리 수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엘리트 중견수 영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계약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수비에서 큰 구멍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써야 한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다.
이번엔 몸이 굳지 않았다

이정후 본인도 수비에 대한 부담을 인정한 적이 있다. 2024년 데뷔 시즌 펜스 충돌로 왼쪽 어깨를 크게 다쳐 시즌을 조기 마감했던 경험 때문에, 펜스 근처에서 플레이할 때마다 몸이 살짝 굳는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이정후는 “어깨 부상 이후 펜스 쪽으로 가면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생각 없이 공만 보고 쫓아가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에이스를 위해 던진 몸

이날 수비가 더 특별했던 이유는 그 배경에 있다. 웹은 이미 투구수 105개를 넘긴 상태였고 야수 실책으로 실점까지 내준 뒤였다. 벤치가 교체를 고민했지만 웹은 코치진을 설득해 마운드에 남았다.
이정후는 “웹이 그 타자까지 상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투구수가 더 많아지면 안 됐다. 어떻게든 그 타구를 잡고 이닝을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웹은 9일 워싱턴전에 이어 2경기 연속 8이닝을 소화하며 시즌 4승을 챙겼다.
웹이 직접 인정한 한 장면

웹은 인터뷰에서 8회 타구를 맞는 순간 처음에는 홈런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안 좋다고 느꼈던 그 순간, 이정후가 계속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을 봤고, 어쩌면 잡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이정후가 그 타구를 잡아냈다며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고 했다.
토니 비텔로 감독도 “웹이 훌륭한 투구를 했지만, 경기의 화룡점정을 찍은 건 이정후”라고 평가했다. 수비 때문에 우익수로 밀려났던 선수가, 에이스의 호투를 완성시키는 수비로 그 평가를 뒤집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