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대전 삼성전, 한화 선발 왕옌청은 3회 2사 1·2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투구수는 68개, 이닝으로는 2와 3분의 2이닝에 불과했다.
보통 선발투수가 이 정도 던지고 교체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경기 도중 우천 중단이 두 차례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 이닝에 두 번 멈춘 경기

3회초 도중이던 오후 5시 38분, 첫 번째 우천 중단이 선언됐다. 9분 만에 경기가 재개됐지만 왕옌청은 곧바로 흔들렸다.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뒤 디아즈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았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결국 오후 6시 두 번째 중단이 결정됐다. 이번에는 42분이나 걸렸다. 두 차례 합쳐 약 50분간 경기가 멈췄다 재개되기를 반복한 끝에, 한화 벤치는 왕옌청을 더 끌고 가지 않고 장유호로 교체했다.
투구 중이어도 교체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원래 KBO 규정상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최소 한 타자를 상대해 아웃시키거나 출루시킬 때까지 교체할 수 없는 게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에는 예외가 있다.
우천 등으로 경기가 중단된 뒤 재개될 때 부상 위험이 있다고 심판진이 인정하면, 이 규정과 무관하게 투수를 교체할 수 있도록 규칙이 개정돼 있다. 우천 중단으로 몸이 식은 상태에서 다시 전력 투구를 하는 건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15~20분은 버티고, 1시간은 거의 안 올린다

현장에서는 이 시간 기준이 어느 정도 통용되는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15~20분 정도의 짧은 중단이면 선발투수가 몸을 다시 풀고 계속 던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30분을 넘기면 선발을 내리고 불펜으로 교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1시간 이상 중단되면 선발투수를 다시 마운드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날 왕옌청의 경우 첫 번째 중단은 9분으로 짧았지만, 두 번째 중단이 42분이나 이어지면서 사실상 1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몸이 식었다 데워지기를 반복한 셈이었다. 교체가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이유다.
실력이 아니라 안전의 문제

결국 이런 교체는 투수의 구위나 그날의 컨디션과는 무관한 결정이다. 왕옌청이 못 던져서 내려간 게 아니라, 우천 중단으로 식었던 몸을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날 장유호가 구원 등판해 2와 3분의 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주며 한화는 10-4로 승리, 6연패를 끊어냈다. 비가 만든 변수를 규정과 관행으로 잘 풀어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