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여도 팬들은 절대 욕 못 한다” 한 시즌에 선발·불펜·마무리 다 뛰었던 윤석민 이야기

4년 90억 원. KIA 타이거즈가 미국에서 돌아온 윤석민에게 안긴 계약으로, 당시 FA 역대 최고액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성적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고 어깨 수술과 긴 재활, 처참한 평균자책점이 줄줄이 이어졌다.

숫자만 놓고 보면 먹튀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커리어지만 KIA 팬들은 유독 윤석민만큼은 욕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려면 그가 걸어온 길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암흑기 KIA를 혼자 버텼다

2005년 KIA에 입단한 윤석민은 신인 시절부터 마무리로 기용됐고, 이듬해인 2006년에는 순수 불펜으로 63경기에 등판해 94와 3분의 1이닝을 소화하며 19세이브 평균자책 2.28을 기록했다.

그 활약에 힘입어 KIA는 최하위에서 4위로 치고 올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7년 선발로 전환했을 때는 결과가 7승 18패였는데, 호투를 해도 패전 투수가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 시즌 이후 잘 던지고도 지는 투수를 가리키는 윤석민 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그의 불운이 강렬하게 각인됐다.

2009년에는 조범현 감독이 부진을 이유로 마무리로 전환시켰다가 한 달 뒤 다시 선발로 돌렸고, 선발로 불펜으로 마무리로 한 시즌 안에 보직이 수시로 바뀌는 일이 반복됐다. 팀 불펜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카드가 윤석민 불펜 전환이었는데, 내구성이 좋지 않아 6일 로테이션을 돌아야 했던 투수에게 보직을 가리지 않고 던지게 한 것이 결국 그의 커리어를 갉아먹는 씨앗이 됐다.

2011년 정점을 찍다

혹사 속에서도 윤석민은 2011년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다승, 탈삼진, 평균자책점 모두 리그 1위였고 투수 골든글러브와 MVP까지 차지하며 그해 KBO 최고의 투수임을 증명했다.

7월에만 완봉승 세 번을 따냈고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9이닝 완투승을 거뒀다.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자격을 얻었지만 구단과 감독의 반대로 해외 진출이 무산됐는데, 이 결정이 그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후 흐름이 말해준다.

메이저리그 도전과 끝

2013년 스콧 보라스와 손잡고 볼티모어와 3년 575만 달러에 계약하며 미국 무대에 도전했지만 더블A에서 4승 8패 평균자책 5.74에 그쳤고 메이저리그 콜업 없이 지명 할당 조치됐다. 2015년 스프링캠프 명단에서도 제외되며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고, KBO 복귀 후에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2016년 어깨 부상으로 오랜 기간 결장하다 그해 12월 수술을 받으며 2017 시즌을 통째로 날렸는데, KIA가 우승하는 장면을 그라운드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2018년 복귀해 8패 평균자책 6.75를 기록한 뒤 같은 해 10월 와일드카드전이 현역 마지막 등판이 됐고, 2019년 12월 어깨 통증으로 정상적인 투구가 어렵다며 은퇴를 선택했다.

90억짜리 계약의 결과만 보면 충분히 아쉬운 커리어다. 하지만 암흑기 KIA를 혼자 떠받치며 선발도 마무리도 불펜도 시키는 대로 다 했던 투수에게 팬들이 쉽게 먹튀 소리를 못 하는 건 그가 먼저 팀에 줬던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